성황리에 마친 지난 11월 2일 왜관 공연은 평화방송에서 11월 18일, 20일, 23일 오후 7시 방송 예정 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
구상의 詩, 가곡으로 울려 퍼지다
장재선 기자
칠곡서 탄생100년 기념음악회
‘내세를 진정 걱정한다면/오늘서부터 내세를,/아니 영원을/살아야 하지 않겠는가!’(구상, ‘오늘서부터 영원을’ 일부)
구상(1919~2004)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음악회가 지난 2일 경북 칠곡군 왜관수도원에서 열렸다. 한국 시문학사 거목인 구 시인은 30대에 가족과 함께 왜관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했다. 구 시인의 부친(구종진 선생)과 형(구대준 신부)은 왜관 수도원이 속한 베네딕도 수도회와 연을 맺고 각기 교육 사업과 사목 활동에 일생을 헌신했다.
왜관수도원이 구상선생기념사업회와 함께 1년 동안 준비한 이 음악회는 흔히 만나기 어려운 고음악(古音樂)의 아취를 격조 있게 선사했다. 구상 시인의 시 작품 4개에 4명의 작곡가가 곡을 붙인 신작 가곡을 초연했다는 점에서도 뜻깊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소프라노 임선혜가 독창회 이상의 열정을 보이며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수도원의 가을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음악회 문은 ‘알테 무지크 서울(ALTE MUSIK SEOUL)’이 열었다. 독일어로 ‘옛 음악’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알테 무지크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단체다. 이들은 이날 바흐와 비발디가 종교적 영성을 담아 작곡한 실내악을 선보였다. 리코더가 연주 중심에 나서 화려하면서도 다채로운 소리의 향연을 펼치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성당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청중은 이날 바로크 음악을 들을 뿐만 아니라 고악기(古樂器)들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바로크 바이올린, 바로크 비올라, 바로크 첼로, 비올로네, 오르간과 함께 챔벌로(하프시코드)가 등장한 덕분이다. 바로크 시대에 피아노 역할을 했던 하프시코드를 실제로 처음 본 청중이 관심을 보이자, 막간 조율 중이던 연주자가 악기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무지카사크라서울 합창단은 수도원의 파이프오르간과 함께 브람스, 뒤뤼플레 등의 교회합창음악을 들려줬다. 이들은 구상 시인의 작품 ‘우음’ ‘진혼곡’ ‘기도’ ‘초설’ 등에 곡을 붙인 신작 가곡도 선보였다. 단원들이 노래 가사에 맞춰 표정 연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파트에 나온 임선혜는 성악계 스타답게 여유 있고 상냥한 무대 매너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구상 시인이 생전에 좋아했다는 성가를 부른 뒤에 자신이 선택한 노래로 답가를 하는 방식으로 음악회 취지를 살렸다. 그는 무대와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자리를 오가며,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와 가곡 ‘바우고개’ ‘그리운 금강산’을 선사했다. 앙코르곡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위령의 날’을 부르기에 앞서 가사 내용을 우리말로 낭송함으로써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전날 수도원에 미리 와서 리허설을 했다는 임선혜는 인간의 음성이 가장 훌륭한 악기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한편, 이날 손수 쓴 ‘기도 편지’를 낭송한 이해인 수녀는 구상 시인과의 인연을 위트를 섞어 들려주며 시인의 호방함과 따스함을 추억했다. 고명딸인 구자명 소설가는 “많은 분이 이렇게 성대한 음악회를 열었으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 구 시인께 축하를 드린다”고 했다. 이날 음악회는 칠곡군이 후원했는데, 백선기 칠곡군수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도 지역 기관장들이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말은 생략해 산뜻한 여운을 줬다.
칠곡 = 글·사진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기사 원문 보기
Comments